딸기 화분을 키우고 있다. 묘목 4그루. 따 먹은 딸기 수는 3개. 아마 수확은 거기까지로 끝일듯.
묘목을 주문하면서 흙과 화분을 같이 주문했는데 생각 보다 화분이 커서 흙이 부족했다. 동네 화원에 가서 흙을 사와야겠다 생각하던 차, 남편이랑 같이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이 대신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당신 피곤하니까라며.(에헤헤) 흙 20kg가량과 모종삽, 그리고 분갈이용 화분 2개를 부탁했다.
시간이 흘러 돌아온 남편...
커다란 비닐 푸대를 열어 속의 내용물을 보여주는데............
헉 이건 뭥미?
이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연탄재 두 장과 모종삽, 약 4-5kg가량의 배양토. 화분은 나중에 구해주신다고 선금 걸라고 해서 거의 3만원을 다 쓰고 왔다는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쨌든 얘기하자면 아저씨의 설명은 다음과 같단다.
1. 원래 배수를 위해 자갈이나 굵은 흙등을 깔지만 그걸 연탄재로 대체하면 된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
2. 아파트 화단에 나가 흙을 파서 배양토랑 섞어 써라.(사람들이 거기에 화분을 버리기도 하니까 괜찮다며..)
이 얼마나 야매스러운 말인가. 사기같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소를 팔러 나갔는데 마법의 콩을 파는 사람을 만나 콩 일곱알만 들고 온 모양새요."
어쨌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아파트 화단에 나가서 흙을 퍼다 집으로 나를 수는 없어서 밤에 잠도 못자고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해결책을 발견했다. 시댁에 화분을 많이 키우시는데 그 중 큰 화분이 하나 죽었다고 하신 얘기가 생각난 것이다. 거기서 퍼 오면 고민은 해결이구나~.
다음 날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모종삽과 큰 비닐 봉지 두개를 가지고 10분거리의 시댁으로 출동하였다. 이미 모두가 일과를 보러 나간 빈 집의 고요한 옥탑 앞 베란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흙을 파서 담고 있자니 죽은 야래향에게도 미안하고 스스로가 너무 실없고 웃기고 그랬다. 하지만 양손 가득 흙을 든 봉지를 들고 오는 기분은 뿌듯.^^
이걸 팍팍 쪼개 부숴놓은 후, 흙을 붓는다.
어쨌든 화분은 완성.
3일에 한 번 정도 물도 주고 해도 많이 봐야 한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롤스크린도 올려주고 1층이라 해 드는데 쫓아다니면서 화분 위치도 바꿔주고... 각고(?)의 노력끝에 전에 올렸던 사진 같은 예쁜 딸기가 대여섯개 맺혔다.
하지만, 어두운 검은 그림자가 딸기에 드리우니...
벌레가 생겼다!
처음엔 진딧물인가 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어쩔씨구리 응애라는 벌레일 것 같았다. 전에 미니장미를 키우다가 생긴 진딧물을 잡느라 약을 뿌렸더니(화원에서 권해줬다) 장미가 죽어서 황당했던 경험도 있고, 몇 개 안되는 딸기를 먹자고 약을 뿌리기도 그래서 불타는 검색 끝에 유기농 해충 방제 방법이 있는 논문을 발견했다.
음. 달걀 노른자와 기타등등을 섞어서 마요네즈 만드는 것 처럼(식초는 안 넣음) 믹서에 오래 돌린 후 만들어진 혼합물을 물에 희석해서 뿌리는 것. 말로 쓰면 간단한데 만드는 건 꽤나 손 많이 가는 일이라 '진짜 유기농' 재배란 어려운 것이겠구나(혹은 사실상 불가능한건지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달걀 노른자 하나를 넣으면 희석할 경우 거의 일 년쯤 매일 뿌려도 될 법한 양을 만들 수 있다.
며칠간 열심히 뿌렸다. 베란다에 달걀 비린내가 나도록.
결과는 "당신은 방제에 성공했습니다. (사기 +50)"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벌레는 없어졌는데 그거 말고도 다른 병이 있는 것인듯. 딸기 관련 문서를 또 찾아보니 여러가지 병 종류도 많고 그래서 깨끗한 흙, 깨끗한 묘목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잎사귀가 하나씩 시들면서 죽어간다.
말 못하는 초목이긴 한데 그래도 키우던 것이라 잿빛으로 마르면서 죽어가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우울해진다.(사기 - 300) 맨 끝이 '락'으로 끝나야 하는데 '희락노애'가 된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추신: 죽었다고 해서 화분 흙을 파낸 야래향이 오히려 살아나서 잎이 나오고 있단다. 흙을 파낸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